석봉 한도현
홀/로/서/기
1989년 "동해도요"를 운영하시던 둘째형님께서 제주도에 "지암요"를 설립하여 이사를 가시는 바람에 우당 스승님의 문하에서 나와
"동해도요"를 맡아서 운영하게 되었다. 이로써 본의 아니게 마음속에 담아둔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동해도요"를 홀로 운영하게 되면서 그동안 생각해 두었던 나만의 창작활동과 실험정신이 가슴속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나의 "장작 가마"를 갖는 것이었다. 이때 큰 형님을 비롯한 우리 오형제의 아낌없는
도움으로 약 6개월 동안의 공사 끝에 꿈에 그리던 장작 가마를 갖게 되었다. 지금도 그 때의 감격스러움을 생각할 때면
묘한 희열과 열정을 느끼곤 한다. 또한 이때 나는 내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인 아내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심리적인 안정도 찾았다.
나의 장작 가마를 갖게 되면서 나는 고려청자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으나. 재현의 길은 멀고도 험하기만 하였다. 그러던 중에
우당 스승님의 소개로 김천 영동화학에서 고려청자를 약 1녁간 연구하게 되었다. 그 후 1년간의 각고 끝에 고려청자 재현을
완성하게 되었다. 도공으로서의 길을 걸어오면서 나 자신이 만든 첫 번째 "도자기"였고, 이것이 바로 홀로서기의 상징이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고려청자 재현은 도공으로서의 첫 관문이었으며, 정작 내가 관심을 두었던 것은 분청사기, 백자, 진사요변,
다완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고려청자 재현 성공으로 자신감이 충만 되어 분청사기, 천목다완, 이도다완, 덤벙사기, 인화문 등
다양한 도자기 재현을 위해 나의 온 정열과 혼을 불사르며 실험과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 중에서 분청사기를 1992년 봄에 재현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나의 홀로서기는 나름대로 성취감을 맛보면 일사천리로 잘 가는 듯하였으나, 나의 멈출 줄 모르는 실험정신으로
살림을 꾸려가는 아내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시절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내 아내에게 미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