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봉 한도현
시/련/기/
현실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나의 고지식함과 거듭되는 무모한 도전적 실험 때문에 가정경제는 파탄 지경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아내와 다툼 그리고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다. 이러한 방탕한 생활은 작품 활동에도 크나큼 영향을 주게 되었고, 연속적인 장작가마의 실패로 이어졌다.
장작 가마의 실패는 막대한 금전적 손실 뿐만 아니라 충만 되었던 나의 자신감마저도 상실하게 되었다. 그 후로 1년여 동안의 상실감이 내게 전부인 도공으로서의 순수한 혼마저 갉아먹는 느낌 때문에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찾지 못했다.
결국 1992년에 동해도예를 휴업하게 되었다. 그 때의 참담한 심정은 명치끝이 너무 아려서 한동안 말도 못하고 장작 가마속에서 칩거하며 몇날 며칠을 울었었다. 뒤돌아보니 그 때도 나는 폐업으로 인해 파탄이 난 내 가정은 안주에도 없었던 것 같아서 아내와 사랑스런 나의 두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시련이 닥쳤을 때, 누구에게나 가족은 큰 버팀목이 되듯이 이번에도 형님들은 암흑속의 나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 둘째 형님의 소개로 경남 진주에서 도예를 운영하고 계시는 아인 박종환 스승님을 알게 되었고, 우리 부부느 21개월 그리고 9개월 된 두 딸을 데리고 아인 스승님의 도예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의 홀로서기는 막을 내리게 되었으나, 아인 스승님 문하에서의 1년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때 아인 스승님과 흙을 찾아다니면서 이도다완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고백자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천목다완을 더 배우게 되면서 도공으로서의 혼을 되살리게 되었다. 또한 ‘안 명수’라는 소중한 친구를 만나면서 인생을 배우게 되었고, 태어나 처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인생관을 세우게 되었다.
아인 스승님과 안명수 친구와의 만남으로 상처 난 마음과 상실된 자심감은 서서히 치유되었고, 홀로서기를 위한 나의 마음도 다시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