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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봉 한도현 제/2/의/성/장/기/


    1993년 봄에 아인 스승님의 문하에서 나와서 경기도 이천 고향으로 다시 와서 ‘동해도예’를 다시 운영하기 시작했다. 한차례의 시련을 통해 도공의 길과 인생관을 정립한 나는 많이 성숙되었음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의 홀로서기와는 사뭇 다른 새로운 시작으로 마음이 설레고 신명이 났었다.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 장작 가마에 대한 감각을 되찾는 일이었다. 예전보다 더 열정적으로 도전하고 도전하였으나, 무모함은 여전히 내게 존재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실패와 경제적인 타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든든한 아내와 오형제의 후원으로 어려웠지만, 작품 활동은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다. 동해도예를 1년정도 운영하다가 둘째형이 제주에서 귀항하여 인계해 주었고, 1994년 4월 4일에 항상 꿈꾸던 나의 도예 ‘한석봉도예’를 설립하였다. 이때도 아내는 나보다 훨씬 대범했다.

    나의 도예에서 작품활동은 창작의지를 불태웠고, 아이디어도 샘솟듯이 쏟아져 나와 도공으로소의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1995년부터 백자와 다완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돌입하였고, 흙을 배합하는 기법과 특수한 유약을 창안하는데 온힘을 쏟았다. 이때부터 흙의 재로에 있어 고령토와 사토를 적절히 배합해서 창출하는 기법을 고수하고 있으며, 유약에 있어서는 수백 번의 실험 끝에 ‘장석과 석회석’ 원료를 적절히 배합한 나 자신만의 특수한 유약을 창안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법은 남들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것이 되었다.

    ‘흙과 유약’, ‘가마재임과 불 때는 기술’의 완성으로 나의 도자기 재현은 가속도가 붙었으며, 잇다른 성공으로 이어졌다. 1996년에 백자 진사체 도자기를 완성하였고, 1998년에는 이조분청 덤벙사기를 완성하였다. 이 시기에 나는 백자에 매료되어 더 많은 실험을 통해 백자의 변신을 꾀하고 있었으나, 다완은 마음처럼 쉽게 완성되지 않아서 답답함이 늘 함께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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