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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봉 한도현 성/숙/기/


    백자와 분청사기 재현에 성공한 후로 한동안 새로운 백자 찾작에 노력을 집중하였다. 흙과 유약에 대해서는 많은 실험으로 원하는 빛깔대로 배합하는 기법을 터특하였으나, 장작 가마 불 때는 기술은 늘 부족함을 느끼곤 하였다. 특히 수 백점의 자식 같은 작품들을 가마속에 차곡차곡 재여서 불을 때서 소성시켰는데, 대부분의 작품들을 깨버려야 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매번 최소 22시간에서 최대 36시간 동안 불의 조화를 살펴가면서 현장을 꼬박 지키면서 “어떻게 하면 작품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을까?”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매년 평균 4~6번에 걸쳐 가마에 불을 때다 보니 여타 도공들과는 다른 나만의 ‘불 때는 기술’을 터득하게 되어 작품의 성공률도 높아졌으며, 명품창출도 가능해졌다. 나는 ‘봉통(가마의 입구로서 최초로 불을 지피는 곳)’에 충분히 예열을 가해서 모든 기물에 열을 고루 전달되는 지를 유심히 관찰하여 안목을 높이고 있으며, ‘칸불(기물을 배열하는 공간, 나의 가마는 5칸이다)’ 과정에서 최소 30분에서 80분 이내로 마무리하는 순간적인 영감과 감각을 터득하고 있다.

    장작 가마를 다루는 기술의 터득과 더불어 작품의 완성도도 높아졌다. 199년에는 고백자를, 2000년에는 유백자를, 2001년에는 천목다완을, 2002년에는 설백자를 2003년에는 귀백자를 차례로 완성하였다. 지난 2001년에는 내게 특별한 의미와 세상과의 소통을 하게 된 해였다. 그해 이천에서 개최되었던 세계 도자기행사의 일환으로 행사장 현장에서 이천지역의 이름난 동료 도예가들이 순번을 정해 장작불로 작품을 소성하는 과정을 신연하였다. 이 때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작품을 창출하지 못하였으나, 나는 아홉 번째 순서로 작품을 소성하여 성공적으로 창출하였으며, 순식간에 80%가량을 일반인들에게 판매하여 행사관계자와 일반인들에게 나 자신과 작품을 알리게 되었다. 특히 그 행사 기간 중 한국을 방문했던 길에 행사장을 찾았던 일본 총리를 지낸 모리 요시로씨의 부인에게 ‘요변다완’을 판매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그 행사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계영사 직원의 권유로 소설 ‘상도’에 나오는 계영배를 알게 되었고, 3년 6개월간의 실험 끝에 잔 중양에 대롱이 없는 계영배(마음을 다스리는 잔)를 만들어 특허를 받았다. 이 일을 계기로 계영배의 교훈대로 넘침과 욕심을 경계하여 도를 넘지 않는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새로운 디자인과 창작 활동에 박차를 가하게 되면서 ‘삼족오’라는 새로운 디자인을 고안해 실용실안을 등록하였으며 모든 작품 및 다완, 다기세트 등에도 새로운 디자인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1999년 고백자의 성공과 더불어 그동안 완성하지 못했던 다완도 함께 성공하면서 다완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생겼다. 이 시기부터 다도구 창작과 나의 차(茶)생활이 시작되었으며, 다도문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도문화를 통해 나는 일반인들과의 소통기회가 많아졌고, 2005년에는 국내외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문경세재 전국 찻사발 공모대전’에 처음으로 다완과 다기세트를 출품하여 ‘고백자 5인 다기세트’로 금상을, ‘덤벙사기 5인 다기세트’로 특별상 등 2개부문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었다. 이 일을 계기로 다완 및 다도구에 더욱 열정을 갖게 되었고, 전국 단위의 공모전에서 여러 차례의 수상도 하였다.

    백자와 다완, 다도구를 통해 나는 도공으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으나,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의 허점함이 내내 자리잡고 있었다. 바로 진사요변에 대한 열망과 이도 다와ㄴ 및 이라보 다완에 대한 갈증어었다. 토정 스승님의 문하에 있을 때부터 진사요번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끊임없이 토해 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매번 부족함을 떨쳐 버릴수가 없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힘이 넘쳐났던 전성기의 여세 속에서 2005년에 드디어 청자적진사요변을 완성하게 되었다. 진사요변의 완성으로 각종 전시회에서 수상도 하였으며, 2006년에 조선일보사 후원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내게 있어서 진사요변은 크나큰 자신감을 안겨 주었고, 이로 인해 도예가로서의 유명세도 더 얻게 되었다. 2007년도에는 청자자진사요변까지 완성하게 되면서 나의 대표적인 창작품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이도 다완 및 이라보 다완의 재현에도 전념하여 완성에 가까운 다완을 만들었으며, 소장하고 싶다는 여러 번의 유혹을 뿌리쳤다. 내게는 아직도 미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2009년 봄부터 이번 예술의 전당 개인전을 준비하면서도 지나온 30년 도공의 길을 뒤돌아보는 시간과 함께 2010년 5월에 나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이도 다완 및 이라보 다완을 성고하게 되었다. 이도다완은 18년간의 기다림으로 완성된 셈이다. 참 긴 세월이었지만, 이제 한 짐을 던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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